나르시시스트에게 차인 썰
3월에 처음 만났던 C는 확실히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PA로서의 첫 부임지가 한국이였던 그는 Chemical engineering 석사였고 주짓수 검정띠 였으며 시간이 날 때마다 취약계층 아이들에게 주짓수를 가르치는 멋들어진 사람이었다.
다양한 주제를 던져 토론을 좋아하는 나마져 쩔쩔매게 하며 지적인 매력을 뽐내던 그는 갈비뼈 근처에는 태즈 문신을, 등에는 커다란 십자가 문신을 가진 반전이 있는 사람이었다.
Consistency가 중요한 나에게 그는 매일 아침 6시 기상 후 카톡을 해주었고 업무 때문에 연락이 되지 않을 것 같을 때에는 미리 알려주는 자상한 면이 있었다. 함께 있지 못하는 날에는 사진을 찍어 자신의 생활을 자주 공유해주었기에 그는 내 삶에 누구보다도 빠르게 침투해왔다.
그를 만나고나서 생전 처음으로 아침에 행복하게 눈을 뜨는 경험을 하게 되었지만 내 스스로가 만들어낸 행복이 아니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는 점을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헤어지고 나서 오랜기간을 힘들어하며 알게 된 점은 내가 나르시시스트를 좋아했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그의 매력에 눈이 멀어 문제점들이 눈에 띄지 않았던 것 같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촉이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잘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커서 적신호들을 무시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벌써 이별을 한 지 3년 이상이 지났고 그를 극복하는데 오랜시간이 걸렸지만 지금도 가끔씩 C는 내 머릿속을 뛰어다닌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나를 보며 차라리 차인 것이 정말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그와 함께라면 진짜 나를 포기하고 그에 맞춰 가짜 나로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자주들기 때문이다.
서로에 대해 아직은 잘 알지 못했던 두번째 만남이 생각난다.
서울역에서 만나기로 했었는데 약속시간을 10분 정도 남겼을 때 열차를 잘못탄 것 같다며 30분 이상 늦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연락.
일반적인 나 같으면 화를 내고 집에 돌아가는 것이 맞지만 당시엔 그가 점점 좋아지고 있어 올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
잔뜩 상심하여 앉아 있던 나에게 그는 약속 시간 정각에 모습을 드러내며 기분이 어떻냐고 물어봤었다.
화가 났는지, 자기가 정각에 와 더 반가웠는지 핸드폰을 던지고 싶었는지 물어보며 내 표정을 살피는 그를 보며 당시에는 그냥 장난기가 많은 사람이며 나랑 웃고 싶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별 후 생각해보니 일종의 테스트 였던 것 같다.
곤란한 상황에 닥쳤을 때 나의 반응이 어떤지, 자기의 의도대로 내가 행동하는지 알아보고자 하는 행동이였던 것.
또다른 적신호는 우리가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때 자신의 불우한 가정환경을 나에게 모두 털어놓았다는 것이다.
폭력적이고 음주 문제가 있던 친아버지와 이혼한 엄마가 자신을 새아버지에게 남겨두고 자살을 한 사실이며, 친아버지에게 돌려 보내진 자신의 어린시절이 얼마나 불우했는지를 덤덤한 말투로 늘어 놓는 그를 보며 마음이 많이 아프고 보듬어 줘야 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렇게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고 안정을 이루어낸 그가 얼마나 의지력이 강하고 굳건한지에 대해 감탄도 했던 것 같다.
이별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자료를 접하면서 이 행동이 일종의 심리적 조정을 위한 것이라는 건 나중에 알게 되었다.
측은한 분위기를 조성해서 감정적으로 우위에 선 후 내가 어떻게 반응 하는지를 살펴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는 종종 자신을 3인칭으로 지칭하곤 했다. 특히 이 행동은 그의 SNS에서 자주 목격 되었는데 PA가 되기 위해 자신이 공부했던 흔적들과 주짓수 대회 2등 트로피를 포스팅하고 스스로를 3인칭으로 칭하며 노력에 대한 찬사를 늘어 놓던 포스팅을 본 기억이 난다.
일반적인 성인의 경우 스스로를 3인칭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잘 없어 굉장한 이질감을 느꼈으며 이러한 행동은 타인보다 자신이 우월함을 표현하기 위한 방식으로 이용된 다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이혼을 한 사실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솔직했으나 자세한 디테일은 밝히지 않았으며 상대가 자신이 아는 사람과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만을 밝혔다. 약간 놀라웠던 부분은 뭔가 달라진 부분을 느끼지 못했냐는 물음에 평소와 다름없이 집은 깨끗했고 식료품도 끊김이 없어 크게 달라진 점을 느끼지 못했다는 답을 주었다는 것이다.
함께 가정을 이뤘던 사람이 바람을 피우기까지 정서적, 행동적 변화가 없을리 없었겠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는 지나치게 자신만의 세계에 집중한 나머지 자신의 배우자가 힘들어 하고 있으며 다른 사람을 만나자고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의 전 부인이 자신의 좋은 커리어를 정리하고 심리학을 공부하는 학생이 되기로 결정한데에는 그가 그녀에게 끼친 데미지도 약간이나마 영향이 있었을 것 같다.
우리는 서로에게 괜찮은 상대였던 것 같다. 나는 그가 보여주는 일에 대한 열정, 미래의 꿈 등에 지지를 보냈고 그는 내가 제2국어로도 그와 수준 높은 토론을 벌일 수 있다는 점과 스트레스가 많은 현재의 커리어를 쭉 버텨내고 있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꼈다. 둘다 운동을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해서 같이 여행 계획을 짜는 것이 즐거웠고, 난폭 운전자들이 끼어 들어도 화를 내지 않는 차분한 모습도 마음에 들었다.
강릉 여행 때 한적한 뒷골목에서 술에 취한 사람들이 보내는 외국인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에도 전혀 주눅들지 않고 나의 안전을 먼저 생각했던 듬직한 모습도 좋았다.
하지만 그는 내가 그의 행동에 대해 질문을 하자 차갑게 변했고, 내가 자신의 미래 계획에 쉽게 동의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이별을 통보하고 그렇게 사라졌다. 나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 합의점을 찾고 우리의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지만 그는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내가 노력을 들일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그렇게 훌쩍 떠나버린 것이다.
그의 평소와 같지 않은 행동에 대해 가벼운 불평을 한 것 뿐인데 자신의 치부를 내가 찾아 냈다고 생각한 것 같고 나에게 호의를 보인 것도 그의 기준에 내가 좋은 엄마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이를 가지는 것에 대한 열띤 토론 후 처음에는 입양도 괜찮을 것 같다고 했던 그는 자신은 꼭 생물학적 아이가 있어야 한다며 그래서 우리는 잘 맞지 않지만 그동안 함께했던 모든 좋은 시간들에 감사한다는 이별 메시지를 남기고는 사라졌다.
나는 그의 이별 통보에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자신의 행동에 불만을 가졌고, 자신이 원하는데로 내가 조종되지 않을 것이기에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인지 일방적으로 관계를 정리하는 것을 선택한 그는 내 전화와 문자, 그리고 카카오톡을 모두 차단하며 함께 했던 시간들을 모욕하고 그렇게 떠나갔다.
이별 메시지를 읽고 손이 부들부들 떨렸던 기억이 난다. 심장도 쿵쾅대고 귀도 멍멍한 느낌.
기존의 이별과는 다른 새로운 이별 방식에 그에 대한 원망보다는 내가 뭘 잘못했을까 하는 생각을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연결되지도 않는 전화를 붙들고 계속 통화 버튼을 누르면서 그래도 마지막으로 한 번만이라도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내 자존심이 바닥을 친 느낌이었다.
너무 힘이 든 나머지 상담을 의뢰했던 친구는 이게 잘 된거라며 그와 결혼을 하고 그를 따라 삶의 터전을 옮긴 후 이런일이 일어났다면 얼마나 큰 일이였겠냐며 위로해줬다. 이건 내가 잘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감정 따윈 생각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편의만 생각한다는 친구의 말.
아침마다 일어나는 것이 너무 힘들었고 처음으로 입맛이 없다는 게 어떤지 알게된 나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그의 연락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를 잊기가 너무 힘들어 몰래 훔쳐본 SNS속의 그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친구들과 한국 이곳 저곳 여행을 다녔고 히말라야 트래킹 준비를 하며 온갖 사람들의 응원을 받고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감정 교류를 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너무 많은 감정을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마음 공부를 하며 상처를 치유하다가 그가 나르시시스트였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나르시시스트는 먹잇감을 고르듯 사람들과 교류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자신에게 이득이 될 만한 사람들 혹은 자신보다 조건이 더 뛰어난 사람들만 남겨두고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 사람들의 경우 가차 없이 내치고 다른 먹잇감을 찾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는 한 때 나에게 가정을 이루고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이 자신의 인생에서 제일 가는 목표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게 가능한걸까? 나르시시스트들은 자식들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고 군림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만약 그의 장래의 아이들이 그의 뜻대로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는 어떻게 할까?
이별을 했다면 좋았던 시간들을 생각하기 보다 그가 마지막에 어떠했는지를 생각하라는 말을 들은적이 있다.
비록 그는 내가 처음으로 동경하는 마음까지 가지며 좋아했던 사람이지만 그의 마지막 모습을 통해 나는 그가 자신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나르시시스트라는 것을 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주장이 강한 headstrong한 사람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도 그의 주문에 빠져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 그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었을 것 같다.